[새소식]병든 부모 보살피는 건 딸·며느리..남편 쓰러지면 또 수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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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스마일시니어 서원 작성일19-05-09 18:17 조회3,681회 댓글0건본문
충북 증평군 박영순(67)씨는 1978년 결혼 후 40여 년간 줄곧 시어머니(91)를 봉양했다. 87년 시어머니가 위암 4기 진단을 받은 뒤 병 수발을 도맡았다. 시어머니는 위와 식도를 절제해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박씨는 묽게 죽을 쒀서 하루 6~7회 차렸다. 사이사이에 시어머니 손발을 주무르고 온몸을 닦았다. 시어머니는 5년 만에 완치됐다. 지금도 하루 4회 식사를 챙긴다. 최근에는 시어머니의 인지능력이 떨어지고 섬망증세(의식이 흐리고 망상을 일으킴)가 있어 더 바짝 붙어 있다.
취재진이 “힘들지 않으냐”고 물었더니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 내 가족이다. 시부모도 나의 부모님이라고 생각해서 힘든 건 없다”고 말했다. 박씨는 “시어머니의 모습이 나의 미래이고, 나한테도 닥쳐올 일이다. 그리 생각하니 힘들다는 생각이 안 든다”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박씨는 8일 정부의 어버이날 기념 행사에서 훈장(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았다. 박씨를 포함해 65명(단체·기관 포함)이 훈포장과 대통령·총리·복지부장관 표창을 받았다. 단체나 기관, 장한어버이상 수상자나 지역사회 효 활동 공로자를 제하고 순수 효행자만 따지면 32명이다. 이 중 며느리가 19명, 딸이 3명이다. 양쪽 부모를 봉양한 며느리이자 딸이 4명이다. 아들은 6명이다. 이 중 한 명은 양가 부모를 모셨다.
이날 효행자 수상자는 여성이 26명, 남성이 6명이다. 지난해(장관 표창 제외)에도 수상자 17명 중 며느리가 8명, 딸이 3명이었다. 2017년 21명 중 14명이 며느리, 딸이 3명이었다. 매년 며느리가 효행상의 주인공이다. 초고령 부모 대부분이 암 같은 중병이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수발의 책임이 여성, 특히 며느리한테 과도하게 전가돼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성가족부 조사에 따르면 국가성평등지수가 2013년 68.9점에서 2017년 71.5점으로 개선됐지만 수발 영역은 비켜 있다.
“부모 병 수발 8년 하다 내가 입원”
[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전북연구원이 2017년 치매환자의 주수발자 349명을 조사했더니 여성이 73%(256명)를 차지했다. 배우자가 36.7%, 딸 28.4%, 며느리 17.2%를 차지했다. 한 여성 수발자(45·며느리)는 연구팀에 “어머니(80)를 부양한 지 8년째 되니까 제가 입원하게 되더라고요. 너무 면역력이 많이 떨어져 대사질환이 생겼다던데, 원인이 스트레스라고 했어요”라고 하소연했다.
여성은 부모뿐만 아니라 병든 남편의 수발자이기도 하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신동욱 교수,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박기호 교수, 충북대 의대 예방의학과 박종혁 교수, 유타대 아시아캠퍼스 심리학과 정안숙 교수 공동 연구팀이 11개 병원 암환자 439명의 수발자 실태를 8일 공개했다. 남성 암 환자의 86.1%가 신체활동을 할 때 아내에게 의지했다. 여성 암 환자 중 남편에 기대는 사람은 36.1%로 낮았다. 정서적 의지 상대도 비슷한 경향이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7년 말 치매·중풍 등으로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보는 사람 중 배우자가 주수발자인 사람이 12만4856명이다. 이 중 아내가 남편을 수발하는 사람이 7만3023명으로 반대(5만1833명)인 경우보다 41% 많다. 지난해 말 기준 가족을 돌보기 위해 요양보호사가 된 사람이 5만5910명인데, 이 중 여성이 90%다.
며느리의 가족 수발은 무한대다. 이번에 국민훈장 목련장을 받은 유수희(69·대전시)씨는 44년 시부모를 봉양했다. 시아버지가 75세에 직장암 4기 진단을 받았고 수술 후 인공항문(장루)을 부착했다. 그 상태로 16년 수발했다. 거동이 힘든 101세 시어머니를 챙기고 있다. 유씨는 “너무 당연한 일인데 요즘엔 세태가 달라지다 보니 당연하지 않은 일이 된 것 같다. 며느리도 자식이니까 당연히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국민포장을 받은 정유진(62·강원)씨는 치매 시어머니(94)를 수발한다. 뿐만 아니라 아파트 옆동에 사는 어머니(86) 월세를 내면서 보살핀다. 어머니도 치매 환자다.
“맞벌이·저출산 시대, 가족 돌봄 힘들어”
설동훈 전북대 사회학과 교수는 “수발이 여성에게 집중되는 것은 아직 우리 사회에서 성 역할 고정 관념이 남아 있다는 것을 뜻한다”면서 “산업화로 가정과 직장의 분리가 이뤄졌고 바깥 일은 남편이, 가정 일은 여성이 맡는 구조가 오랫동안 지속됐다”고 분석했다. 설 교수는 “정보화·저출산 시대, 양성평등 시대에서는 이 같은 모델이 더 이상 지속할 수 없다”며 “국가나 사회 시스템이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되 시장에서 고급 서비스를 해결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정형선 한국보건행정학회장(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은 “90년대 중반 일본의 노인인구 비율(14%)이 지금의 한국과 비슷했는데, 당시 일본에서 딸에게 돌봄을 많이 의존했다. 우리가 그 상황과 유사하다”고 분석했다. 정 회장은 “여성의 온화함이나 부드러움이 돌봄 분야에 잘 맞기 때문에 여성 수발자가 더 많은 면이 있다”며 “그렇지만 여성의 사회참여 확대, 맞벌이 증가 등의 추세를 감안할 때 여성 돌봄 부담을 장기요양보험이 대체하도록 내실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성식·이에스더·이승호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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