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간병인 부족 파고든 요양병원 약물…사회가 함께 감시해야 〈시사기획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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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원방문요양센터 작성일20-10-22 12:05 조회651회 댓글0건본문
KBS <시사기획 창>이 9월에 보도한 '코로나19 요양병원, 감시받지 못한 약물'편을 접한 시청자들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방송에 나왔던 '약 먹고 잠자는 노인'이 바로 내 부모님이다"라는 절절한 호소가 전국 각지에서 이어졌습니다. 쏟아지는 제보들 중에 "요양병원 입원 40일 만에 어머니가 의식불명으로 쓰러졌고, 이후 40일을 더 대학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숨졌다"는 안타까운 내용이 눈에 띄었습니다.
요양병원 입원 전후 제보자 어머니의 모습
제보자가 보낸 어머니의 투약 기록지에는 KBS 보도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던 여러 가지 항정신병제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입원한 첫날부터 고용량 항정신병제인 쿠에티아핀이 처방됐고 투약은 날마다 계속됐습니다. 의식을 잃은 날 아침에도 밥은 못 먹었지만 쿠에티아핀은 먹은 거로 기록돼 있을 정도였습니다.
제보자가 보낸 어머니의 투약 기록지에는 KBS 보도로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던 여러 가지 항정신병제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입원한 첫날부터 고용량 항정신병제인 쿠에티아핀이 처방됐고 투약은 날마다 계속됐습니다. 의식을 잃은 날 아침에도 밥은 못 먹었지만 쿠에티아핀은 먹은 거로 기록돼 있을 정도였습니다.
환자 투약 기록지. 입원한 동안 매일 항정신병제가 처방됐다.
간호 기록지에 따르면, 제보자의 어머니는 입원 첫날부터 "집에 가겠다"고 소리를 쳤습니다. 환자가 소란을 일으킬 때마다 행동통제 효과가 강력한 할로페리돌 주사가 처치됐습니다. 할로페리돌은 항정신병제 중에서도 1950년대에 만들어진 1세대 약물입니다. 이후에 만들어진 2세대 약물에 비해 근육을 이완시키는 등 부작용이 커 미국 등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환자가 소란을 피우면 의료진은 할로페리돌을 주사했다.
대한요양병원협회는 "다른 입원환자들의 안정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치매환자의 행동이 거칠어질 경우 약물을 투여한다"고 말합니다.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환자에게 적절한 약물 처방을 내리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의료진 권한이라고만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처방하는 약물의 갯수와 빈도가 너무 많습니다. 약물을 줄이려는 병원은 찾아보기도 힘든 지경이고요. 왜 그럴까요?
■ '일당정액수가제'의 함정, "환자=돈"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요양병원 수가 체계를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 병원의 경우 환자를 치료할 때마다 처치의 내용별로 수가를 매기는 '행위별 수가제'를 주로 적용받지만, 요양병원은 하루에 환자 1인당 받는 건강보험 수가가 정해져 있습니다. 바로 '일당정액수가제'입니다. 간단히 말해 하루에 욕창 드레싱을 3번 하든, 10번 하든 환자 1명당 병원이 받는 돈은 똑같다는 얘기입니다. 병원 입장에선 보다 편리하게 환자를 다루기 위해 약물의 힘을 빌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환자의 상태가 호전되지 않는다 해도, 입원만 해있으면 매달 입원비의 최대 80%까지 건강보험공단에서 수가를 적용받습니다. 환자가 퇴원을 하면 매달 건보공단에서 지급되는 2백만 원 넘는 돈을 요양병원은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취재 중 만난 현직 요양병원 간호사와 원무과장은 요양병원의 '환자 모시기 경쟁'에 대해 토로했습니다. 최근 요양병원들이 동네마다 들어설 정도로 급증하며, 어떻게든 환자 한 명을 유치하기 위해 다른 병원보다 간병비를 적게 받는다고 홍보한다는 얘기도 나왔습니다. 실제 취재 중에 만난 한 요양병원에서도 "간병비 0원"이라고 환자 유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간병비'는 항정신병제를 과다 처방하는 우리나라 요양병원의 구조적 문제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현재 요양병원 입원비를 보면, 건보공단 지원금과 본인부담금 외에 간병비가 추가로 있는데, 이 간병비는 건강보험이 적용 안 되고 개인이 부담합니다. 환자 측이 병원에 간병비를 내면, 병원이 간접적으로 간병인을 고용해 여러 환자들을 돌보게 하는 공동 간병시스템을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입니다.
요양병원 입원비 구조. 간병비는 환자가 직접 부담한다.
그런데 간병인은 의료인력이 아닙니다. 현행 의료법상 "요양병원은 환자 40명당 의사 1명, 환자 6명당 간호사 1명 이상을 갖춰야 한다"는 규정이 있지만, 간병인에 대한 규정은 전무합니다. 요양병원이 간병비로 이윤을 남기려면, 간병인 1명이 돌보는 환자 수는 늘어날 수밖에 없겠죠. 이렇다 보니 취재 중 만난 지방의 한 병원에서는 환자 23명을 간병인 1명이 돌보고 있었습니다. 인간이 기계도 아닌데, 거동이 불편한 23명의 노인을 하루 24시간 돌본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간병비 할인을 내세워 환자를 유치하고, 실제로 간병인 수를 확 줄이고…. 이런 간병인력의 빈 틈은 바로 항정신병제 같은 약물이 노립니다. 간병인의 돌봄 일손을 덜기 위해 환자들을 일정 시간 재우거나 행동을 통제하는 항정신병제를 쓰는 겁니다.
방송 이후 "요양병원 입장에서는 약 하나 더 쓰면 손해일텐데 왜 약물을 과다 처방하냐"는 의문과 비판이 인터넷 댓글 등에서 제기됐습니다. 정말 더 손해일까요? 간병비와 항정신병제 약값 단순비교만 해 봐도 간병인 일당은 10만 원, 항정신병제 1알 값은 몇십 원~몇백 원으로 저렴합니다. 환자 본인 부담인 간병비를 줄여주면서 더 많은 환자를 수용하려면, 이들을 '관리'하기 위한 항정신병제 약물은 결코 빠질 수 없는 겁니다. 우리나라 요양병원 입원환자 6만여 명이 한 달 평균 35개, 거의 날마다 항정신병제를 처방 받고 있다는 통계가 이를 뒷받침합니다.
항정신병제 중 하나인 할로페리돌
■ 요양병원-약품 공급업체 리베이트, 약 남용 부추겨
요양병원의 효율적 경영에 있어 '투약'이 중요하다보니, 이걸 노린 고질적 영업이 또 있습니다. 요양병원과 의약품 공급 도매업체 간의 리베이트입니다. 매달 계약된 양만큼의 약을 요양병원에서 처방해주면 약값의 15%를 도매업체가 요양병원에 되돌려주는 실태가 이번 KBS 취재로 드러났습니다. 취재진은 약품 도매업자가 거래 중인 여러 요양병원들의 약품 공급 목록을 입수했습니다. 약품 목록을 분석해보니, 대부분 '저가 복제약'들이 주를 이뤘습니다. 그중에서도 간병 인력을 최소화하면서도 환자 관리를 용이하게 하는 항정신병제들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KBS <시사기획 창>이 입수한 요양병원 공급 약품 목록
같은 효과가 입증된 약품이라면 저가 복제약을 쓰는 것이 건강보험 재정에는 도움이 되겠죠. 문제는 고비용의 간병비를 대신할 대체재로 '저가 항정신병제 복제약' 등이 과다 처방되고 있고, 이를 잘 아는 약품 도매업자들은 건보공단에서 약값을 챙긴 뒤 일부를 요양병원에 되돌려 주며 '그들만을 위한 수익 구조'를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그 피해는 제대로 된 돌봄을 못 받는 노인과 건강보험료를 내고 있는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상황입니다.
요양병원 일당정액제 허점을 잘 아는 현직 요양병원 간호사는 이렇게 증언합니다. "약값을 아끼려고 진통제나 소화제 등 필수약품은 가장 싼 것으로 바꿔가면서도 절대 처방량을 줄이지 않는 약이 있다"고. 바로 노인환자 행동을 통제하는 항정신병제들이었습니다. 할로페리돌, 쿠에티아핀, 디아제팜…. 항정신병약 이름들을 경력 8년차 요양병원 간호사는 줄줄 외웠습니다. 이런 약물을 쓰면서 "너무 괴로웠다"고 호소했습니다. "본인이 기대했던 요양병원은 노인 환자들을 잘 돌보는 것이었는데, 어느 순간 노인들을 잠재우고 행동을 통제하는 약물을 넣는 역할에 중점이 맞춰져 있었다"는 힘겨운 자기 반성이었습니다.
기자에게 항정신병제 투약을 고백하는 요양병원 간호사
전직 요양병원 원무과장도 "간병인은 줄이면서 항정신병제 약값은 절대 줄이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처방량을 유지해 약품 도매업체와의 계약분을 지켰고, 이를 통해 받는 리베이트는 "병원 운영에 큰 보탬이 됐다"고도 얘기했습니다. 정해진 계약량만큼 약을 처방해준 요양병원이 얼마나 고마운 손님인지, 도매업체는 "여름 휴가비 명목으로 인사를 챙기는 것도 늘 잊지 않았다"는 증언과 증거자료까지 취재를 통해 확인했습니다.
■ 스스로 입원하는 노인은 없다…'존엄한 노후' 논의 필요
보도 이후 요양병원 업계의 쓴 소리도 KBS 시청자 게시판을 통해 제기됐습니다. 일부 성난 요양병원장들은 KBS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습니다. "노인 복지를 위해 일하는 의료진의 사기를 떨어뜨리고, 대다수 병원에서 항정신병제를 남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해 사과를 요구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KBS 요양병원 보도의 취지는 특정 개인이나 병원, 단체를 비난하거나 비판하자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치매 등 행동장애를 보이고 거동이 불편하며 대소변을 못 가리는 어르신들을 돌보는 의료진의 노력은 크게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취재로 만난 다수의 요양병원 의사들과 경영진, 간호사, 간병인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지금의 요양병원 운영은 기형적이고 약을 과다처방하고 있으며, 본인은 나이 들어 가고 싶지 않다"는 얘기를 전했습니다.
한 병실에 노인 환자 여러 명이 모여 공동생활을 한다.
우리 사회가 요양병원 문제에 대해 조금 더 솔직하게, 이성적으로 대했으면 합니다. 고령화로 급증하는 노인 환자들과 요양병원의 민낯을 들여다보고 개선하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우리보다 고령사회를 먼저 겪은 미국과 일본, 심지어 복지 선진국 핀란드에서도 요양시설에서의 화학적 구속문제가 커져 사회적 의견을 모아 문제를 해결해 나갔습니다.
요양병원 입원 환자만 약 20만 명. 그 가족들까지 추산하면 100만 명에 달합니다. '내가 가도 괜찮은 요양병원'을 만들기 위해 어떻게 체계를 바꿔야 할지 숙고하고, 존엄한 노후를 위해 추가해야 하는 재정은 얼마나 되는지 진지한 사회적 대토론을 시작해야 합니다.
홍혜림 기자 newshong@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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