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소식][취재후] 요양병원 노인들은 왜 잠만 잘까?〈시사기획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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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서원방문요양센터 작성일20-10-22 12:12 조회563회 댓글0건본문
요양병원 취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단순했습니다. 코로나19 시대, 가장 많은 사망자가 나온 곳이기 때문입니다. 10월 19일 기준 코로나 사망자 444명 가운데 17.8%인 79명이 요양병원에서 발생했습니다. 단일 감염경로 중에 가장 높은 수치입니다.
고령의 기저질환이 많은 노인들이 코로나 집단감염으로 피해를 입은 것은 우리나라뿐만이 아닙니다. 미국에서도 코로나 사망자의 40%가 노인 요양시설에서 나왔습니다. 전 세계적인 팬데믹 위기에서 노인은 가장 취약했습니다.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요양병원 면회가 금지되며 KBS 보도본부에도 피해 제보가 잇따랐습니다. 대부분 면회금지 기간 부모님을 못 뵌 사이 욕창이 심각해졌거나, 예고 없이 사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유사한 피해 사례들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주기적으로 올라왔지만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고 소멸되고 있었습니다.
보호자들이 면회를 갈 수 없으니 아무래도 '돌봄 공백'이 있지 않을까, 이런 막연한 생각으로 5월부터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취재진 진입이 금지돼 있어 간병인을 섭외해 요양병원 실태 파악에 나섰습니다. 요양병원 실태는 생각보다 훨씬 충격적이었습니다. 한 병실에 나란히 누워있는 노인 7명. 낮 시간인데도 다들 자고 있었습니다. 깨어나서 "나는 죽었다"고 말하는 노인에게는 '영양제'라 불리는 의문의 수액이 투약됐고, 이후 노인이 조용히 잠드는 장면이 KBS 카메라에 포착됐습니다.
영상을 확인한 순간, 처음에는 공포스러웠습니다. 계속해서 "아프다", "그만해라", "하느님이 나를 죽였다"고 되뇌는 노인. 그리고 "콧줄을 왜 빼느냐, 영양제가 맞고 싶어서 그러느냐"는 의료진의 대답. 요양병원 노인들에게 일상적으로 투약되고 있는 약물의 실체를 파악해야겠다는 판단을 하게 됐습니다.
미국에서는 이미 요양시설 노인들에게 투약된 항정신병제가 사회적 문제가 됐습니다. 환자의 행동을 약물로 통제하는 이른바 '화학적 구속'(Chemical Restraint)입니다. 미국에서는 요양시설에서의 화학적 구속 문제가 심각하다고 인지해, 19가지 항정신병제를 노인시설에서 투약하는 것을 제한하고, 투약량을 보고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 자료를 보니 KBS 카메라에 포착된 투약 후 잠드는 요양병원 노인들의 상황과 굉장히 유사했습니다. 항정신병제 투약 후 정신없이 자는 노인들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미국 식품의약청(FDA)에서 노인 환자, 특히 치매 노인들에게 투약하면 사망률을 높이는 등 부작용이 크다고 경고한 19가지 항정신병제가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쓰이고 있는지, 더 파헤쳐 보기로 했습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한 달 넘게 자료 요청을 했지만, 거절당했고,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남인순 의원을 통해 국내 언론 최초로 자료를 입수할 수 있게 됐습니다. 해당 자료는 우리나라 1천 5백여 개 요양병원 전체에서 19가지 항정신병제를 처방한 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급여를 신청한 내역들입니다. 기간은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9년 11월부터 2020년 4월까지, 총 6개월 동안의 자료들이었습니다.
분석 결과, 요양병원 1천 3백여 개에서 한 달 평균 233만여 개의 약물들을 처방하고 있었습니다. 해당 약물들은 의학적 판단에 따라 노인 환자들의 불안이나 행동장애 등이 심하다고 판단되면 처방될 수 있는 약품이기에 많은 요양병원에서 쓰고 있다고 해서 그 자체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문제의 핵심은 '이 정신병약들이 정말 필요한 환자들에게 처방됐느냐'는 점이었습니다. 환자 상병코드를 분류해 어떤 환자들에게 이런 정신병약들이 투약됐는지 추가 분석해봤습니다. 그 결과, 항정신병제 투약 목적에 맞는 조현병 등 정신질환자는 평균 2,457명으로 전체 처방환자의 3.7%에 불과했습니다. 대다수 투약은 치매환자에게 이뤄졌는데, 평균 5만 8천여 명이었습니다. 전체 투약환자의 89%를 차지했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투약 환자 6,372명에 해당하는 7.3%는 치매도 정신질환도 없는 '일반 환자들'이었습니다.
주목할 만한 점은, 요양병원 항정신병제 처방이 '코로나 면회금지 기간'에 더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인 지난해 11월과 12월 평균 처방량보다 1차 코로나 사태에 해당하는 1월과 2월 평균 처방량은 2.6% 증가했고, 더욱 확산세가 심해진 3월과 4월 평균 처방량은 7.5%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할머니들은 약 먹여 재워야 해.", "약을 먹여도 안 들어." 이번 요양병원 취재에서 실제 간병인들이 나눈 대화들입니다. 불이 밝게 켜진 아침에도, 환한 낮에도 정신없이 잠만 자거나 미동도 없이 누워만 있는 노인들. KBS 보도 이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는 "노인 주의 약물 지표를 만들어 항정신병제를 과다하게 처방하는 요양병원들을 감시하고 제재를 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대한요양병원협회 역시 "의학적 판단에 의해 처방이 내려지고 있지만, 면밀히 조사해 과용되는 측면이 있다면 줄여나가겠다"는 공식 입장을 전해왔습니다.
나이가 들어 늙고 아픈 건 누구나 피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모두는 요양병원의 '불편한 진실'을 냉정하게 봐야 합니다. 말 그대로 요양을 위해 병원에 갔는데, 정신병약을 한 움큼 먹고 누워만 있다면 육신의 감옥에 갇힌 절망적인 고통을 느끼지 않을까요? 대한민국의 노년이 조금 더 건강하고 평온하게 생을 마무리할 수 있게끔 불필요한 항정신병제 처방을 줄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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